장성택이 처형되었다.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의 공신일 뿐 아니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그가 온갖 공개적 수모를 받은 끝에 재판 당일 처형된 것이다. 북한 표현 그대로 그 '무자비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그의 숙청이 어떤 계기에 의해 12월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2월이 선택된 데에는 두개의 상징이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일이다. 2011년 12월 17일이다. 다른 하나는 ‘광명성 3호 2호기’가 궤도에 올라간 날이다. 2012년 12월 12일의 일이다. 이 둘은 연관되어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남겼다는 “원대한 구상과 유훈”이 있고, 위성 발사는 그 ‘유훈’의 일환이다.
장성택 숙청의 숨은 의미
장성택이 처형되던 2013년 12월 12일에 노동신문은 다른 한켠의 기사를 통해 그 의미를 적시했다. 이 기사에서 노동신문은 “조선 사람들은 왜 김정일 영도자의 유훈을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고 결사관철하려 하는가?”라고 묻고는, “어버이 장군님의 영전에서 다진 이 나라 인민의 충성의 맹세”였기에 그 위성은 “우리의 넋과 심장, 꿈과 슬기가 뼈가 되고 살과 피로 응결된 것과도 같은 하나의 생명체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버이 장군님’과 ‘인민의 충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감상의 정치적 의미는, 통치체제에서의 ‘유일성’이다. 여기서 유일성은 물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발표된 장성택 ‘판결문’에도 이 점은 또박또박 적혀 있다.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중략)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12일의 이 강조점이 17일을 기점으로 한 김정일 추모행사까지 군과 인민의 김정은 충성맹세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후계자 승계의 관건이 권력의 완벽한 장악이라는 점에서 북이 이 부분에 힘을 넣은 정황은 여러 군데서 파악된다. 김정일 사망 이듬해인 2012년 북은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우리 당 사업에서 주선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사업은 오늘도 앞으로도 당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라 표명한 바 있다. 당 대표자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전국당세포비서대회를 개최하여 당의 계통을 세우는 과정도 그러하려니와 팔짱을 끼거나 잡초를 뽑는 모습으로 보여진 김정은의 친민적 이미지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특히 올해 6월, 39년 만에 처음으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유일영도 10대 원칙’(강조는 필자)으로 바꾸는 정치행위를 통해 통치의 유일성을 강조했던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장성택 실각의 출발이, 북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군사적 강경드라이브를 걸던 시기에 포착되었다는 점에 ‘유일영도 10대원칙’ 제정 시점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12월사건’은 어느 정도 예고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를 고려한다면
그럼에도 장성택 처형은 여전히 우악스럽다. 교도통신 11일자 현지 기사는 장성택의 해임사유에 ‘여성문제와 마약사용’까지 넣어 공표한 것에 약간은 놀란 주민의 표정을 전하고 있다. 그와 같은 부패행위가 실제 있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놀라운 일이지만, 또 그것을 공표하는 행위도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즉결처형까지. 이런 행위는 명백히 과거형이기에 김정은의 리더십 지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유일령도체제’라는 것이 김정은으로의 권력집중으로 나아간다고는 해도 김일성, 김정일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여간 우리의 관심사는 이렇게 거칠게 드러난 ‘유일령도체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하는 점이다.
12월 12일 장성택 처형이 있던 날, 북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 회의를 우리 정부에 제안해 왔다. 통일부가 이를 받아 회의를 준비 중이다. 장성택 문제는 내부 문제일 뿐이므로 남북관계의 규율은 유지하자는 신호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제한적이다. 북의 대남관계 폭은 지난가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불과 나흘을 앞두고 북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된 과정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당시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이 결정을 통보했는데, 남북관계 악화를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때 우리 정부 일각에서 북한을 굴복시켰다는 식의 발언이 지속되었고 북의 신경도 점차 예민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칫 벌어질지도 모를 파국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정황도 당시와 비슷하다. 그 연결고리에 개성공단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는 북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면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합의를 잘 끌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되새겨야 할 또 하나의 과제
북 내부 경제개혁 문제는 좀더 혼란스럽게 읽히는데, 그것은 장성택 판결문 속에 복잡하고 상충되는 견해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의 상징에서 비답을 찾을 수 있다. 눈물을 흘리는 박봉주 총리와 그의 내각에 칭해진 ‘경제사령부’라는 어휘가 그것이다. 이는 기업소, 협동조합 등 경제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개혁조치가 지속된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런 개혁조치는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에 의해 직접 제시된 6·28경제개선조치가 지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것은 장성택 숙청의 의미가 북한내 노선투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성택 충격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권의 의미를 가장 크게 되새긴다. 남북관계의 평화를 이루려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인권의 신장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원리는 체제 인정이었다. 이는 내정간섭 금지와 연결되어 서로의 죄를 눈감아주는 악역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인권신장에 대한 확신 없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인류가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한국사회에 인권침해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민주주의운동이 한창인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과 북이 공히 인권을 신장하는 방향에서 남북관계가 새롭게 규율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한반도 인권운동’이다. 장성택 충격이 우리에게 던진 또 하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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