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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 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등록날짜 [ 2015년02월28일 10시37분 ]

추위를 뚫고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중에 몇 종의 책이 한번이라도 사람의 손길을 탈수 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2014년 상반기 국내 출판 산업의 신간 발행 종수는 총 3만4281종이며 이 중 32.4%가 수험서를 비롯한 교육 관련 도서이다. 많은 언론이 다루었다시피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출판사의 적자는 커지고 적자폭을 감소시키기 위해 출판사들은 잘 팔리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 과감히 발행 종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우수문학도서 선정, 심사인가 검열인가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발표한 ‘세종도서 문학 분야 사업’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핵심은 <2015년도 우수도서 (세종도서) 선정사업 추진방향>의 ‘심사기준 및 선정제한’ 요소인데, 학술 및 교양 분야와 달리 문학 분야는 아래와 같은 문구를 심사기준으로 삼고 있다.
 

1.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
2. 예술성과 수요자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 우수문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작품
3. 인문학 등 지식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
 

문학작품 안에서 작가는 모든 이념과 사상, 기존의 관습에 대해 질문하고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모든 문학작품은 탄생하는 순간 작가의 사상과 이념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이라는 문구는 문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다. 이른바 문화와 출판에 관계된 정책 당사자들이 문학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을까. 아니면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들은 문학작품이 자신의 권력에 금이 가게 만들까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검열에 관한 한 지배자들의 문제는 무지한 게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학작품이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 결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자신들의 통제영역을 벗어난다는 것을, 시대와의 불화를 필연적으로 가져온다는 것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문체부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측은 위의 기준이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은 책의 운명이 결국 반복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책에 대한 금서조치는 그 당시의 검열정책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며, 왕을 비난하는 시를 유포한 혐의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게 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필화사건들을 생각나게 한다. 어느 시대에나 부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은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불안으로 수많은 작품과 책들을 금지의 영역 안에 가두어놓았다. 1960년대 남정현의 「분지(糞地)」 사건, 70년대 김지하의 「오적」 필화사건, 『우상과 이성』을 썼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2년을 복역하기도 했던 리영희 선생, 진보적 목소리를 냈던 잡지 『사상계』 『다리』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의 강제폐간 등을 살펴보면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문학의 작품성은 당대 권력이 평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는 조항은 과연 선정기준에 합당한 말일까. 정책자들은 아마도 한류열풍처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대형 베스트셀러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문학작품은 스스로를 상품성 바깥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 편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쓸모 있는 것의 쓰임새를 알고 있지만, 쓸모없는 것의 쓰임새를 아는 사람은 적다”라는 말이 나온다.
 

문학작품은 스스로 부정하려 해도 책으로 나오는 순간 상품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상품이 된 작품을 펼쳐보면 그 안에서는 다시 상품이 되어버림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상품의 운명을 거부하는 상품이 바로 문학 관련 도서인 것이다. 근대문학 초창기에 씌어져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은 발행 당시에 얼마나 상품성이 있었으며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했을까. 『사슴』은 1936년 당시 100부를 발행했고, 친일행적과 문학성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서정주의 『화사집』도 (100부 한정판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많아야 500부를 넘지 않게 찍었을 것이다. 1920년대에는 시집 초판이 200부 정도였으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집 초판은 다 판매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책 중에 한두 권이 백년, 이백년 후에 우리가 지쳐 힘이 들 때 살아가는 힘을 줄지 모르는 일이다.
 

지배자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늘 공공의 이익이지만 그 공공의 이익이라는 범위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인가.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는 정지용, 백석, 이용악, 오장환 시인의 책을 공개적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필사본과 복사 본으로만 전해지던 책들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금지도서에서 풀려났고 하루아침에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책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책으로 탈바꿈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출판 분야 소비지수는 지난 10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생산은 정체, 판매는 감소, 소비는 약세’라고 발표한 진흥원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학에 특정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침체에 빠진 출판문화 전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출판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일이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말을 앞세워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지금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그들이 얻은 권력이 어떤 권력인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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