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는 시・서・화 삼절(三絶)이자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이름 높지만, 그 삶과 예술의 깊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김정희, 강세황 등 조선후기 삼절로 꼽히는 인물들도 시에서는 신위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시는 청신하고 회화성이 높으며 그의 글씨와 그림에도 이런 시적 정취가 깃들여져 있다.
신위 <묵죽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신위는 당대의 명필인 송하 조윤형(1725~1799)의 딸을 배필로 맞았지만 아들을 얻지 못하고 부실 조씨에게서 네 명의 서자를 얻었다. 평산 신씨 명문가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양으로 적자를 잇지 않고 네 아들을 동등하게 길러냈다.
<시령도>는 문장과 산수화로 이름을 남긴 맏이 신명준과 화사한 꽃그림으로 일세를 풍미한 둘째아들 신명연이 아버지 신위와 합작한 두루마리 작품이며 처음 공개되는 신위의 필사본 문집 <경수당전고> 곳곳에도 아이들을 애틋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또한 <묵죽도>의 담백한 붓질에는 사람을 지위로 차별하지 않았던 신위의 인품이 묻어난 작품이다. 그의 '흉중성죽(胸中成竹, 그림보다도 가슴 속에 대나무를 완성하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라는 말에는 예술에 앞서 인격을 닦아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신위의 예술은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면서 "신위의 시와 그림을 감상하며 고전의 가치를 새롭게 느껴보기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