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 한빛 기자】 지난해 제10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작가 김주원의 개인전 <84번 토치카에서 보낸 1년>이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전시 중이다.
김주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놓고 음악과 텍스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합시키거나 독특하게 조합, 재배치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는 5년 만에 단독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인 <84번 토치카에서 보낸 1년>은 김주원이 군 복무시절 구상했던 글의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학부에서 문학을 공부한 김주원은 2004년 GP의 통신병으로 근무하며 핵폭발 이후의 종말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경비병, 척후병, 라디오 디제이가 등장하는 동명의 시놉시스를 구상했다.
‘토치카(Tochka)’는 방어기지를 의미하는 러시아어로 전쟁 시 기지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적과 아군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김주원의 ‘84번 토치카’에서는 창 밖으로 낙진과 검은 비, 폭설과 가뭄의 풍경이 펼쳐지고, 안쪽에서는 척후병과 경비병이 서로를 감시하며 언제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을 끝없이 기다린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 김주원은 자신이 과거 텍스트로 만들었던 설정과 구성을 다시 가져와, ‘84번 토치카’가 상징하는 핵폭발과 전쟁, 죽음과 실패, 임시적인 거주와 절망적인 삶 등에 내포된 정서를 영상과 사진, 인쇄물의 형식으로 제시한다.
전시 주요 작품의 제목도 전시와 마찬가지로 <84번 토치카에서 보낸 1년(파트1-파트4)>(2020)이다. 김주원은 평소 인테리어 현장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그가 한 건물의 리모델링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편집한 것이다.
작가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와 공구의 모습들, 부서지고 덧입혀지는 건물의 부분들과 거기에서 파생된 소리들을 채집하며, 공간이 폐허처럼 변했다가 매끄러운 모습으로 다시 지어지는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리고 약 3개월의 시간을 담아낸 <84번 토치카에서 보낸 1년(파트1-파트4)>는 4시간의 영상, 330장의 사진, 32곡의 배경음악과 그것을 설명하는 80장의 텍스트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작가는 이 영상을 거꾸로 돌려 편집해 서서히 허물어지고 황폐해지는 공사장의 모습과 시놉시스 속 ‘84번 토치카’의 모습을 병치시켜 보여주고 있으며 영상 중간에 공사의 흐름과는 무관한 엑스트라 클립들이 삽입되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추락, 실패, 기쁨, 죽음 등의 감각들을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10월 21일까지 열린다.
(사진=두산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