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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원
등록날짜 [ 2013년11월23일 11시24분 ]

많은 이들이 진작부터 우려하던 ‘제2의 유신시대’가 진짜로 도래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느닷없이 서울이 평양이 된 모양이다. 동네 구멍가게에 하루종일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물론 절이고 교회고 할 것 없이 ‘위대한 수령’ 박정희 대통령의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찬가가 이 땅을 덮는가 하면, 경제성장만 이루었다면 식민지배도 독재도 아름답다는 ‘유일사상’이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점령했다. 정부에 반대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는 심할 경우 불법화되고 해산되게 생겼다. 이렇게 한반도는 ‘적화통일’이 되고 말았다. 우습게도 이 정부가 흔드는 붉은색 깃발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전혀 엉뚱한 이름이 쓰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쿠테타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국정원 등의 선거개입 때문에 정당성이 많이 의심스럽긴 해도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통치하는데, 민주적 헌정체제가 작동을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어떻게 우리는 북한 같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봄직한 장면들을 날마다 목격하게 된 것일까? 한국은 더이상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게 되었는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볼프강 메르켈이라는 독일의 비교정치학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체제 사이에 다양한 종류의 제한적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통칭하여 ‘결손(defective) 민주주의’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이것은 민주적 선거제도가 실시되고 민주주의의 다른 요소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러 교란 요인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기를 멈춘 지배체제를 말한다. 이 결손 민주주의의 한 유형으로, 정부가 의회를 우회하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임(delegative) 민주주의’가 있는데,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 심하게 망가져 있다.

MB정부 이래 지금 한국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단지 어떤 보수적인 정책들을 관철시키는 것을 넘어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과 시민권마저 침해하는 일이, 점점 더 그 정도를 강화해가면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민주주의를 특별히 ‘자유(liberal)’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확히 바로 그 조건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르켈도 이런 유형의 결손 민주주의 유형을 ‘비자유(illiberal) 민주주의’라고 규정하는데, 내 생각에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아주 질 나쁜 이 유형의 유사 민주주의일 뿐이다. 이러다가 아예 민주주의의 최후 경계마저 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고, 자유민주주의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는 세력이 우리 민주주의를 이렇게 황폐화시켰다는 아이러니가 매우 씁쓸하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걷어내고자 더 급속하고 심하게 민주주의에서 이탈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선거 이상의 문제임을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헌법적 한계와 더불어 대통령 개인의 정치철학이나 정치스타일이 (어쩌면 지금 국면에선 가장) 큰 문제이지만, 우리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적 한계 그리고 약한 시민사회와 비민주적 문화 전통 등의 문제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기로에 처한 우리의 미래

우리 사회에서는 재벌이나 영남패권 세력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교란할 권한을 아주 쉽게 그리고 강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계층적, 지역적 기반을 가진 야당 세력이나 민주적 시민사회의 힘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언론의 상업화와 권력화의 정도도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일상적 문화와 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지평조차도 민주주의에 전혀 우호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돈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덤벼드는 ‘윤창중’과 ‘김진태’ 같은 이들을 보라. 이런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온전할 리 없다. 앞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향해야 할 과녁들이 많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일단 사법부의 독립성 여부에 따라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망가질지 판가름 나게 생겼다. 과연 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헌정체제의 원리를 망각하지 않고 전교조나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을 의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제발 그러기를 바라지만, 정치화된 우리 사법부의 그 유명한 ‘경국대전 판결’이나 ‘사후 매수죄 판결’ 등을 떠올려보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걱정이다. 자칫하면 우리의 ‘비자유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고착화되거나 아예 민주주의이기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정의로운 시민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쟁투와 저항, 단지 이것만이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싶다. 자유의 댓가는 영원한 감시와 견제라는 서양의 오래된 공화주의적 격언처럼 말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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